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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猫일기

사랑스런 스토커

by 윗쿠리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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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흘을 쉬었다. 

내가 쉬는 날 우리 집 고양이는 종일 내 뒤만 졸졸졸 쫓아다니는 스토커가 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집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귀여운 스토커다. 

 

베란다 문을 왜 안열어주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아침나절에 베란다 청소를 했다. 냐옹이와 꼬부기가 수시로 베란다에서 놀기 때문에 가끔은 청소를 해서 적당히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한참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이였는지, 빗물 내려가는 하수구 주변이 꽤 더러워졌다.

 

쿠리가 나오지 못하게 베란다 문을 모두 닫고, 쏴아하고 호스를 틀어 물청소를 한다.

 

엄마가 베란다서 뭐하나 몹시 궁금한데, 여느 때처럼 나가는 냥 구멍은 문으로 닫혀있다. 소파 위에 올라가서 청소하는 엄마를 구경하는 쿠리냐. 

 

왜문을안열어주고사진만찍고있는지궁금한표정

 

시원하게뿌려지는물방울들을신기하게바라본다

 

오랜만에 한 청소로 깔끔해진 베란다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베란다 시멘트 바닥 위에서 쿠리도 기분이 좋은 듯 뒹굴대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난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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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 특기는 깜놀표정 짓기

 

집에서 쉬는 날은 쉬는날이 아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먼지가 쌓이고 더러워진 곳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쿠리가 항상 창문턱에서 누워 있길 좋아하니 오고가며 더러워진 커튼을 빨아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레일에 달린 커튼을 떼고 나니 여기저기 늘어진 실밥들이 눈에 거슬렸다. 쿠리가 장난치다가 발톱에 걸리까 봐 걱정이 된다.

 

바느질 셋트가 들어있는 가방을 꺼내와서 라이터와 쪽가위를 들고 열심히 실밥 정리를 했다.

 

매캐한냄새에깜놀한표정을짓는중

 

라이터를 보고 쿠리는 또 깜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 고양이 특기는 깜놀 표정 짓기. 

 

대충 실밥 정리를 끝내고 세탁기에 집어 넣은 다음, 팡토리에 보관해 둔 택배 상자를 꺼냈다. 한국의 당근 마켓 같은 일본의 메루 카리에 팔 물건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손이 안 닿아서 의자를 가져다 올라갔더니 그새 쿠리가 의자 위에 앉아 모델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네.

의자를 참 좋아하는 것이 영락없는 고양이구나 넌. 

 

의자위에서나이쁘지하는중

 

 

진짜 사냥놀이

 

해가 질 무렵 기온이 좀 내려가고 낮더위가 사라지면 쿠리는 베란다에 나가 일과를 마무리한다. 

 

낮동안에 체온조절을 하고 일몰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벌레와 야모리 ( 작은 도마뱀 )가 베란다에 가끔 출현하는데, 쿠리는 야생의 사냥감을 보고 대 흥분을 한다. 

 

민첩하게 도망가는 야모리를 잡아서 꿀꺽 삼켜버리기도 하고, 아주 가끔 바 선생을 잡아서 거실에 물고 들어오는 환장할 일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벽에 찰싹 붙어 있는 야모리 선생을 한참동안 꼼짝도 안 하고 지켜보고 있더니, 순식간에 사냥에 성공하고 입에 문 야모리를 내 앞에서 자랑한다. 

 

벽에 붙어 쉬고있는 야모리
졸지에사냥감을뺏긴야옹이표정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쿠리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처음에 꽃잎인지 알았다.

자세히 보니 야모리를 물고 있길래, 당장 살려줘 소리를 지르면서 사냥감을 뺏어 버렸다.

 

뺏고 보니 야모리는 이미 꼬리가 잘려나가고, 축 늘어진 것이 미동도 없었다. 야모리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털북숭이 괴물에게 일격을 당해 숨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혹시나 기절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나무가지 위에 올려다 두었지만,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내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아차 싶었던 나는 뒤늦게 쿠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평소 사냥놀이도 제대로 안해주는 집사는 진짜 사냥감을 잡아온 고양이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잘 했어. 우리 공주 사냥도 잘하네. 

 

약육강식의 세계가 자연이라지만 생명이 사라진 야모리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에게는 하루 중 유일한 낙이자 놀이 일 수도 있는 셈이다.

 

야생에서 사냥을 하며 본능을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고양이에게 행복인 것일까? 반려동물로 태어났으니 일생을 편안하게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일까? 

 

사랑하는 반려묘가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집사의 마음인 것이라, 이래저래 생각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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